매년 4월 2일은 안작데이로 호주인들에게는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니, 호주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기념일 중 하나입니다.
ANZAC은 Australian and Sew Zealand Army Cops의 약자로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을 의미합니다.
안작데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당시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이 함께 갈리폴리 전투에 참여했던 것을 기리기 위한 국가 추모의 날입니다. 호주 정부와 군 당국은 안작데이 추념식을 통해 "전몰장병들의 희생을 국민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다짐하며 "안작데이는 호주와 뉴질랜드 전역의 국민 모두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새로이 하는 날"이라고 강조합니다.
안작데이의 유래
대전이 벌어지던 1915년 4월 25일에 안작군이 최초로 조직되어 많은 호주, 뉴질랜드 젊은이들이 터키 갈리폴리 상륙작전에 투입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려 1만여 명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는데요.
당시 호주는 영국식민지 였기 때문에 영국이 전쟁을 선포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영국 연합군의 측에 서서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고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연합군은 영국의 지휘아래 제대로된 훈련도 받지 못한 젊은이들이 바로 전쟁에 투입되었고 사실상 이는 영국 사령부의 무모한 작전이었습니다.
8개월 넘게 지속된 이 전쟁은 이렇듯 많은 연합군 희생자를 발생시켰고 영국 사령부의 작전실패로 수많은 호주와 뉴질랜드의 젊은이들이 희생되자 호주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 전쟁을 계끼로 호주인들 사이에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나라의 국민이라는 긍지와 함께 강한 국가 정체석이 싹트기 시작했고 함께 전쟁에 참여한 호주와 뉴질랜드 두 나라 사이에 강한 유대감과 많은 정신적인 유산을 남겼습니다.
1901년 1월1일에 설립된 호주 연방국가의 당시 인구는 500만 명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당시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약 42만 명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6만 명이 넘게 전사하고 15만여 명이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호주와 뉴질랜드는 이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서 안작군이 최초로 조직된 4월25일을 안작데이로 지정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위한 추모 행사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안작데이 행사
안작데이의 행사는 크게
새벽추도식 (The Dawn Service)
안작데이 시가지 행진 (The Anzac Day National March)
일몰추도 (The Last Post Ceremony)로 이루어 집니다.
새벽추도식
새벽은 전쟁이 끝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병사들이 새벽이 되기 전에 방어태세로 전쟁을 기다리며 느꼈던 평화로운 순간들의 느낌을 기억함과 동시에 갈리폴리전투에 새벽에 착륙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이후로 안작데이에는 평화로운 새벽시간에 추모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새벽 추모식은 안작데이의 많은 행사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행사로 큰 도시에서는 갈리폴리반도 상륙 개시 시간에 맞춰 새벽 4시 30분에 추모식이 시작됩니다.
그 밖에도 전국 곳곳에서 새벽에 크고 작은 추모식이 열립니다.
시가지 행진
그 이후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안작데이 최대의 행사인 행진이 시작되는데요, 이때는 육군, 해군, 공군뿐만 아니라 퇴역한 참전용사, 참전용사의 후손들, 호주 군대를 지원하는 후원자 및 연방국가와 동맹국까지 모두 행진에 참여합니다.
일몰 추도
끝으로 오후5시 경에는 안작데이의 마지막 순서인 일몰추도식이 있습니다.
이 일몰 추도식에서는 호주, 뉴질랜드, 터키 국가가 연주되고 일몰에 맞추어 군대의 종료 나팔소리인 The Last Post와 함께 호주국기가 하강하면서 공식적인 안작데이 행사는 끝이 납니다.
안작쿠키
안작데이에 사람들은 안작쿠키 라는 것을 먹습니다. 전쟁당시 호주의 많은 아들과 남편들이 전쟁에 투입되었을 때 여자들이 잘 상하지 않고 열량이 높은 데다가 보관도 편리한 쿠키를 만들어서 보낸 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까지도 안작데이를 기념하며 다양한 레시피의 안작쿠키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안작쿠키의 수입은 전쟁당시 피해자 가족들을 위한 기금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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